14세기 중반부터 15세기 후반까지, 무려 116년 동안 이어진 전쟁이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백년전쟁(1337~1453)인데요, 이 전쟁은 단순히 영토 다툼이나 왕위 계승 문제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당시 유럽 전체를 뒤흔든 경제 불황, 그리고 양국의 재정 위기와 사회 갈등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모두 내부적으로 돈이 부족하고, 백성들의 불만이 커지는 상황에서 그 해결책으로 택한 것이 바로 대외 정복과 약탈, 즉 침략이었습니다.
전쟁을 통해 상대방의 땅과 자원을 빼앗고, 자국민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는 전략이었죠.
그 결과,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100년 넘게 전쟁을 벌이며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뒤흔들게 됩니다. 지금부터 백년전쟁이 왜 일어났고,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어떤 영향을 남겼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전쟁의 배경 – 왕위 계승과 영토 다툼
백년전쟁의 시작은 프랑스 왕위 계승 문제에서 비롯됐습니다.
1328년 프랑스 왕 샤를 4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영국 국왕 에드워드 3세가 자신의 어머니가 프랑스 왕의 여동생이라는 이유로 왕위 계승권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귀족들은 에드워드 3세를 인정하지 않고, 발루아 가문의 필리프 6세를 새 왕으로 세웁니다.
이에 반발한 에드워드 3세는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프랑스를 침공, 결국 1337년 전쟁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배경이 숨어 있었죠. 바로 양국의 경제적 위기입니다. 영국은 주요 수출품인 양모 산업의 침체로 큰 타격을 입었고, 프랑스 역시 전염병(흑사병)과 내부 반란으로 사회가 불안정했습니다. 양국 모두 전쟁을 통해 국민의 시선을 돌리고, 자원을 확보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겁니다.
2. 주요 전투 – 장궁과 잔 다르크
초반에는 영국의 우세가 이어졌습니다.
특히 1346년 크레시 전투, 1356년 푸아티에 전투에서는 영국의 장궁(longbow)이 큰 활약을 하며 프랑스 기병대를 압도했습니다. 기병 중심의 전통 전술에 의존하던 프랑스는 큰 피해를 입고 혼란에 빠졌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전세는 조금씩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바로 오를레앙의 소녀’ 잔 다르크(Jeanne d'Arc*입니다.
1429년, 잔 다르크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며 프랑스 왕세자 샤를을 도와 잉글랜드군에 맞서 싸웠고, 그 결과 오를레앙 전투에서 승리하며 프랑스인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줍니다. 잔 다르크의 등장은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죠.
결국 잔 다르크는 영국에 포로로 붙잡혀 마녀로 몰려 화형당했지만, 그녀의 존재는 프랑스 민족의 결속력을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3.전쟁의 결말 – 영국의 패배, 프랑스의 통일
1453년, 카스티용 전투를 끝으로 전쟁은 종결됩니다. 영국은 프랑스 본토 대부분의 영토를 잃고, 오직 해안 도시 칼레(Calais)만 남기게 되었죠. 사실상 프랑스의 승리로 끝난 셈입니다.
이후 프랑스는 중앙집권 국가로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했고, 영국은 내부 혼란(장미전쟁)에 휘말리며 국내 정세가 크게 흔들립니다.
백년전쟁은 단순한 국경 분쟁을 넘어, 유럽의 정치·사회·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 전쟁이었습니다.
프랑스는 중앙 집권화에 성공하며 근대 국가의 기반을 마련했고, 영국은 국내 정치 불안으로 이어져 왕권 약화와 의회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죠. 무엇보다 이 전쟁을 통해 유럽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강화되었고,
근대 군사 전술(장궁, 화약 무기)의 발전도 본격화되었습니다.
또한, 이 긴 전쟁은 평민들이 직접 전쟁에 참여하고 국가를 지키는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어요. 특히 잔 다르크 같은 인물은 단순한 영웅을 넘어, 이후 민족주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결국 백년전쟁은 단순히 ‘오래된 전쟁’이 아니라, 유럽이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전환점이 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던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