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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산 왕조 페르시아, 어떻게 세워졌나? 아르다시르 1세와 제국의 시작카테고리 없음 2025. 5. 9. 19:21
오늘날 이란과 이라크 지역은 오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제국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한 땅입니다. 특히 이란 지역은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본거지로, 수천 년간 고대 문명의 중심지 중 하나였죠.
그중에서도 오늘 우리가 이야기할 "사산 왕조 페르시아(Sassanid Persia)"는 기원후 3세기부터 약 4세기 넘게 중동 지역을 지배하며 강력한 문화와 행정 시스템, 종교적 색채를 구축한 제국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사산 왕조는 도대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요? 그 뿌리부터 흥망성쇠까지 살펴보며, 사산 왕조의 성립 배경을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1. 사산 왕조 이전의 배경: 파르티아(아르사케스) 제국의 쇠퇴
아르사케스 왕조 사산 왕조가 등장하기 전, 이란 지역을 지배하던 국가는 파르티아(Parthia) 제국, 즉 아르사케스 왕조였습니다.
파르티아는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로마 제국과 대치하며 번성했지만,
중앙 집권이 약하고, 귀족들의 힘이 강해 점차 정치적 혼란과 분열이 심화되었습니다.
특히 로마와의 잦은 전쟁, 내부 귀족 간의 반란이 겹쳐 3세기 초에는 국가 전반이 쇠퇴기에 접어들었습니다.
2. 사산 왕조의 건국자: 아르다시르 1세의 등장
아르다시르 1세를 형상화한 그림 사산 왕조의 창건자는 아르다시르 1세(Ardashir I)입니다.
그는 오늘날 이란 남부 파르스 지방(페르세폴리스 부근)의 지역 총독의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파파크(Papak)는 지역 권력자였고, 조로아스터교(조로아스터교의 부흥)를 후원하며 정치적 기반을 다졌습니다.
아르다시르는 아버지의 기반을 이어받아 점차 인근 도시들을 정복하고 세력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3. 파르티아를 무너뜨리다: 호르미즈간 전투
결정적인 사건은 기원후 224년, 파르티아의 마지막 왕 아르타바누스 5세와의 호르미즈간 전투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아르다시르는 대승을 거두고 파르티아를 멸망시킵니다.
이후 스스로를 *이란의 왕 중 왕(Shahanshah)"이라 칭하며 사산 왕조의 초대 황제로 즉위합니다.
4. 사산 왕조의 체제 정비와 확장
아르다시르 1세는 단순한 군사 정복자에 그치지 않고,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를 마련합니다.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채택하며, 종교와 정치가 결합된 통치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후계자인 샤푸르 1세(Shapur I)는 로마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영토를 확장했고,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를 생포하기도 했습니다.
사산 왕조는 이후 이슬람 제국에 멸망하기 전까지(651년) 중동의 강자로 존재했으며, 이슬람 이전 이란 문명의 마지막 찬란한 제국으로 평가됩니다.
사산 왕조는 단순히 한 왕조의 교체가 아니라 이란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어낸 출발점이었습니다.
조로아스터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적 통치
중앙집권적 체제와 제국 행정 구조
로마, 비잔틴과의 오랜 외교 및 군사 경쟁
사산 시대의 건축, 미술, 문자(팔라비 문자) 발전 등
이 모든 것들이 이슬람 이전 이란 문명의 정수를 보여주는 핵심 요소들입니다.
오늘날 이란은 여전히 사산 왕조의 유산을 중요한 문화적 정체성의 일부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페르시아의 마지막 왕조로서 사산 제국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역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