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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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를 뒤흔든 몽골의 세금 개혁과 은본위 경제 이야기카테고리 없음 2025. 5. 29. 16:35
13세기 몽골 제국은 전 세계 육지의 약 22%에 해당하는 유라시아를 통일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닌 제국으로 기록됩니다. 하지만 그들이 단순히 '정복자'였다고 보기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몽골은 실크로드를 통해 흐르는 막대한 자본과 상품을 가장 효율적으로 관리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세금 체계, 통행 제도, 금융 기반 등에서 혁신적인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단순한 군사력이 아닌, 제도적 설계와 경제적 통일성이 실크로드의 황금기를 가능케 한 것이죠. 몽골의 세금 혁신과 실크로드의 경제 질서 1. 판매세 30분의 1로, 무역의 숨통을 열다몽골은 무역 대상국마다 상이했던 번잡한 통행세, 관세, 지역세를 전면 폐지하고, 단 하나의 세금으로 통일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판매세 1/30 제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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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의 황금시대, 몽골이 만든 유라시아의 질서카테고리 없음 2025. 5. 29. 16:17
실크로드는 단순한 무역로가 아니었습니다. 고대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문화·경제·군사 네트워크였습니다. 동쪽의 중국에서부터 서쪽의 로마까지, 비단, 향신료, 보석, 철기, 종이, 종교, 사상 등 모든 것이 이 길을 통해 오갔죠. 하지만 이 길은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산적과 약탈자, 국경의 복잡한 관세, 부족한 기반 시설… 여러 제국들이 실크로드를 지배하려 했지만, 완전한 통일과 효율적 통제는 누구도 이루지 못했죠. 그러던 중, 13세기 초 유라시아에 혜성처럼 등장한 제국이 있었습니다. 바로 몽골 제국입니다. 몽골은 실크로드 전 구간을 장악하고, 그 길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수준으로 안전하고 빠르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실크로드는 역사상 유례없는 황금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칭기즈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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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이야 왕조는 어떻게 스페인을 정복했을까? | 이슬람 세력의 유럽 진출 히스토리카테고리 없음 2025. 5. 15. 21:44
"스페인에 아랍어가 왜 남아 있을까?" 이 질문은 중세사 속 거대한 전환점을 설명하는 열쇠가 됩니다. 7세기 말, 아라비아 반도에서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던 이슬람 세계는 북아프리카를 넘어 유럽 본토에 진입합니다. 이 과정에서 중심에 선 세력이 바로 우마이야 왕조입니다.이 글에서는 우마이야 군이 어떻게 스페인을 정복했는지, 그리고 그 배경과 결과를 정리했습니다 :) 1. 우마이야 왕조의 팽창 정책 661년부터 다마스쿠스를 중심으로 성립된 우마이야 왕조는 초기 이슬람 세계의 영토 확장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 왕조는 종교적 사명과 정치적 야망을 바탕으로 동쪽으로는 인더스 강, 서쪽으로는 북아프리카를 향해 진군을 이어갔습니다. 698년, 우마이야 군은 비잔틴 제국의 카르타고(현재의 튀니스 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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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산 왕조 페르시아, 어떻게 세워졌나? 아르다시르 1세와 제국의 시작카테고리 없음 2025. 5. 9. 19:21
오늘날 이란과 이라크 지역은 오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제국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한 땅입니다. 특히 이란 지역은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본거지로, 수천 년간 고대 문명의 중심지 중 하나였죠. 그중에서도 오늘 우리가 이야기할 "사산 왕조 페르시아(Sassanid Persia)"는 기원후 3세기부터 약 4세기 넘게 중동 지역을 지배하며 강력한 문화와 행정 시스템, 종교적 색채를 구축한 제국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사산 왕조는 도대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요? 그 뿌리부터 흥망성쇠까지 살펴보며, 사산 왕조의 성립 배경을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1. 사산 왕조 이전의 배경: 파르티아(아르사케스) 제국의 쇠퇴 사산 왕조가 등장하기 전, 이란 지역을 지배하던 국가는 파르티아(Parthia) 제국, 즉 아르사케스 왕조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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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경제는 왜 100년 뒤처졌을까? 백년전쟁 이후 유럽 각국 경제 비교카테고리 없음 2025. 5. 9. 11:09
영국과 프랑스는 14세기부터 15세기까지 이어진 백년전쟁이라는 긴 갈등을 겪었지만, 전쟁 이후의 경제 회복 속도는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영국은 자본주의적 경제 구조로 서서히 전환되며 산업화의 기반을 쌓았지만, 프랑스는 여전히 봉건적인 농업 중심 경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왜 같은 전쟁을 겪었는데도 결과는 이렇게 달라졌을까요? 이 글에서는 영국은 어떤 경제 구조를 형성했고, 프랑스는 왜 실패했는지, 그리고 독일·이탈리아의 경우는 어땠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1. 영국은 왜 앞서갔나? 자본과 기술의 조기 축적영국은 15세기 이후 농업에서 양모 산업 중심의 상업화가 이루어지며 자본이 축적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르주아 계층과 상공업자들이 경제를 주도했고, 중세적 장원제에서 탈피해 자유로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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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베크에서 앤트워프까지! 12세기 유럽 북부 교역권의 탄생카테고리 없음 2025. 4. 18. 19:19
12세기 유럽은 단순한 농업 중심 사회를 넘어, 상업과 도시 중심의 사회로 변모해 가던 시기였습니다. 기술의 발전과 인구 증가, 농업 생산량의 향상은 유럽 전역에 '호경기'라는 새로운 시대의 바람을 불어넣었고, 이런 경제적 호황은 물류와 교역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자극하게 됩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자급자족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옷감, 소금, 향신료, 철기, 목재, 곡물 등 다양한 물품을 멀리 있는 도시와 마을에서 사고팔기 시작했죠. 이러한 흐름 속에서, 유럽의 남북을 연결하는 ‘유통의 아웃렛(간선 교역로)’이 형성되며, 바로 이 시기에 지중해와 북해, 발트해가 하나의 경제 네트워크로 묶이는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북해와 발트해를 중심으로 성장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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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문화를 만들다! 푸거와 메디치, 도시 경제가 낳은 르네상스의 후견인들카테고리 없음 2025. 4. 18. 19:07
중세 유럽이 종교 중심의 농업사회에서 벗어나 점차 도시 중심의 경제 구조로 이동하면서, 세상은 눈에 띄게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14세기부터 16세기에 이르는 시기, 유럽에서는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위대한 문화적 운동이 꽃피게 되는데, 이 시대의 이면을 살펴보면 단순히 예술가들의 창의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중요한 배경이 존재합니다. 바로 도시 경제의 발달과 신흥 상인 계층의 부상, 그리고 이들이 후원한 문화와 예술의 르네상스입니다.왕이나 교황이 아닌, 도시에서 탄생한 거부(巨富)들의 등장은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의 ‘푸거 가문’과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부자들이 아니라, 금융과 무역을 통해 유럽의 권력을 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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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트르에서 노트르담까지, 중세 유럽을 바꾼 교회 건축의 시대카테고리 없음 2025. 4. 18. 18:55
중세 유럽 사회에서 교회는 단순한 종교 공간을 넘어선 존재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일상과 정신세계는 대부분 종교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교회는 단지 기도나 미사를 드리는 장소만이 아니라, 행정과 세금, 교육, 복지, 심지어 재판까지 관여하는 핵심 기관이었죠. 그러다 보니 마을이 형성될 때에도 자연스럽게 교회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았고, 교회를 둘러싼 시장, 주택, 광장 등이 함께 발전하면서 오늘날 유럽 도시의 기본 구조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정신적 신앙의 중심이자, 물리적 공동체의 중심이었던 셈이죠. 12~13세기, 교회 건축이 폭발하다 12세기 후반부터 유럽에는 유래 없는 호경기(경제 호황)가 찾아왔습니다. 잦은 전쟁과 침략이 잠잠해지고, 농업 생산량이 늘어나며 사람들은 여..